그러면 도의 근원은 어디라고 해야 할까요.

유가에서 말하는 천[하늘]이라고 해야 할까요.

푸른 하늘 말인가요? 천리天理를 말하는 것인가요.

추상적이고 뭔가가 잡히지가 않네요.

왜 그럴까요. 영적인 생명기운을 빼버리고 추상적인 관념화된

개념을 써서 그렇죠.

 

적어도 6천년 이전의 인류들은 그런 관념화된 언어들를 쓰지는 않았죠.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낀 생명 그 자체를 표현했죠.

삼신三神이라는 말은 그런 영적 생명력과 철학이

함께 숨쉬는 최고의 언어 표현이라는 말이죠.

 

도지대원道之大原은 출호삼신出乎三神이라

도의 큰 근원은 삼신에서 나오느니라.”1

 

선인仙人 유의자有爲子께서 약 4천년전에 하신 도언道言이죠.

도의 큰 물줄기는 전부 삼신에서 다 나왔다는 말이죠.

도의 세계에서는 삼신의 신교철학神敎哲學을 모르고는

그 기원을 알 수가 없죠.

가 어디서 나왔는지, 이 어디서 왔는지,

의 기원이 어딘지 오리무중이죠.

2,500년전에 갑자기 공자와 석가, 노자가 나와서

새로 만든 학설 내지는 종교정도로만 알고 있죠.

공자 선생도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했죠.

공자 당신께서는 단지 옛사람들의 학설을 서술했을 뿐이지

창작하지는 않았다는 말이죠.

 

그 이전에도 7천년간의 도의 역사가 더 있었고요.

이건 기록으로도 남아 있는 겁니다.

겨우 2,500년 전의 역사적 사실만 가지고 도의 근원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제 우리는 공자·석가·노자·예수 이전의 인류 황금시절의

사상과 철학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현 유···기독교의 뿌리사상인 삼신, 신교사상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현 시대의 사상과 사고의 뿌리를 찾고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며

현실세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합리한 인간 삶의

근본적인 해답을 찾을 수가 있죠.

 

이제 저와 함께 삼신三神의 세계 속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죠.

여기에서 새로운 세계창조의 영감을 얻고 인류가 그토록 꿈꾸어 오던

모두가 하나되고 기쁨속에서 손을 맞잡고

다같이 노래부르는 환무還舞를 출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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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근원根源!

라는 말도 잘 모르겠는데 도의 근원이라는 것은 또 무슨 의미죠?

 

가만히 보면 나라는 존재가 있는 것은 확실하니,

그리고 숨쉬고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도 확실하니

나라는 생명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겠네요.

영원하지는 않지만 현재에는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조건에서

그냥 욕구하는대로 살기만 하면 될까요.

그러면 너무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주어진 일차원적인

동물의 속성으로만 살다 없어지는 것은 아닐지.

 

생명은 왜 이 우주에서 탄생한 것일까요.

생명이 나오는데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인가요.

그냥 생기는 거 아닌가요.

의문은 끝이 없습니다.

 

단언하건대

이 몸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은 그 본처가 있고,

이 거대한 우주 차체가 생명덩어리가 아니라면

개별의 생명도 분화되어 개체화되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이 자연과 생명이 돌아가는 길,

그 이치를 도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라는 길이 그냥 무심의 경계에서

있는 그대로 살아갈 때 보이기 시작하니 말입니다.

세속에 찌들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정신과 육체가 오염되어 있으면

새까맣게 당달봉사가 되어서 정말 느끼기가 힘들죠.

 

지금과 같이 물질화되어 있고 금전지상주의 세상에서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도가 나타나기가 무지하게 힘들죠.

인간이 못나서 그런것이 아니고 환경자체가 안되는 것이죠.

 


정말 자연과 함께 순수 우주광명 속에서 인간과 생명의

그 본처자리를 느끼면서 그 속에서 동화되고 생활화되고

축체화되면서 살았던 인류의 황금시절이 있었죠.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이 시절 지고지순한 정신으로, 영감으로 내리 받아서

천지와 인간의 생명구조와 그 작동원리를 판에다 찍은듯이

암송하고 노래하고 주문처럼 외우고 댕겼죠.

우리는 그 때의 기록과 생활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이 우주와 자연에 충만한 그 생명덩어리를

삼신三神이라고 불렀죠.

생명의 그 원초적인 기운을 신이라고 부른거죠.

 

그 생명의 원초적인 기운, 즉 신이 세가지가 있어서

삼신이라고 불렀을까요.

아닙니다. 원초적인 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기운의

세가지 속성 때문에 붙은 이름이죠.

낳고, 기르고, 성숙하는 생명의 속성 기운 때문이죠.

 

생명의 원래 기운이 원초적으로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는거죠.

무조건 낳고요. 그 다음에는 커간다는 말이죠. 그러고서 익는거죠.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죠.

 

인간은 무슨 이유가 있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무조건 낳는 신의 속성에 의해서 이 세상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고서 아무 이유없이 자라는 것입니다.

자라잖아요. 나무도 자라고 풀도 자라고. 인간도 자라고.

그리고는 영원히 자랍니까? 아니죠. 일정시간이 되면 멈추죠.

멈추고서 그 속을 여물게 하죠.

해서 열매를 맺기도 하고

어른으로 성숙하기도 하고, 성인聖人이 되기도 하고.

어쩌다 보면 쭉정이가 되기도 하죠.

 

삼신三神 이란 단어 속에는 이런 생명에 대한 순수직관의 정의와 철학이

깊숙히 내재되어 표현되고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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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먼저 우리 조상들의 도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그렇게 편협하게 니들은 틀리고 우리들만 옳다 그런 분들이 아닙니다.

온 세계를 아우르고 사해동포가 형제고,

더불어 살 수 있는 법방을 개척했던 인류사를 개척하셨던 분들이셨죠.

 

인생과 우주를 통관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활을 하고 국가 운영을 했죠.

···기독교가 있기 이전에 통합된 도의 세계에 대한 가르침이

우리 조상님들의 사상 속에는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이에 대한 기록이 천년동안 깡그리 없어졌지만

반면에 이것을 후손들에게 남기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분들이 계셨죠.

특히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던 그 암울한 시절에,

우리의 역사와 민족 정기의 씨를 완전히 말릴 때

이 기록들을 남기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죠.

 

지금은 가장 개화되고 개방된 세상이죠.

물질적으로는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풍요롭게 지내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물론 남쪽만의 이야기이지만요.

그러면서도 정신적으로는 가장 암울한 절망의 시기이기도 하고요.

지금의 물질적 성공을 더욱 빛내고 앞으로 더 큰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진정 민족의 가치관이 바로 서야 하고

정말 세계보편적인 사상으로 세계동포를 품어야 하죠.

그 해답을 우리 조상들의 그 맑고 순수한 정신세계 속에서 표출되었던

상고철학인 신교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제 저와 함께 이 세계역사의 출발점에서

주역으로 활동하셨던 선현들의 범우주사상과

개척창업역사의 생생함을 체험하시면서 힘찬 전진을 하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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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들지 않을 때 그냥 나가면 먹을 것이 있고, 전쟁도 없고,

인간들은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신과 함께 서로 잘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몇백년을 살았던 시절이 있었죠.

태고시절의 이야기죠.

 

그 때 마음껏 사고하고 마음껏 도닦고 하면서

인생과 우주에 대해서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이 있었죠.

지금과 같은 혼탁한 세상이 오기전,

그리고 신과 인간이 같이 살면서 낙원과 같이 생활했던 때,

인간이 깨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구전심수口傳心授하던 때가 있었죠.

 

그게 말입니다.

말로만 전해 왔으면 지금의 우리들은 아마 전혀 알 수가 없었을 거예요.

지금으로부터 6000~1만년전의 이야기이니까요.

이 시기에 점점 그것들이 기록으로 남게 되었지요.

그런 태고의 황금시절의 기록과 이야기들에 바탕을 둔 생활, 국가경영이

그래도 2천년전까지는 내려왔죠.

 

체제가 없어지면 이제는 기록으로 남을 수 밖에 없죠.

그 순간 또 후손들을 위하여 기록을 보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었죠.

제가 보기에는 근 1500년전까지만 해도 그런 기록들이 지천에 늘려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찾아 보기가 엄청나게 어렵죠.

 

좀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사상 전쟁이 있었죠.

이른바 낭가사상郎家思想이라고 해요.

태고적 때부터 내려오는 인간과 신의 세계, 자연의 이치를 관통하고 

이를 생활원리로 체득하면서 인간완성을 추구하고 

만인이 다 함께 축복을 받으면서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집단의 무리죠.

개인의 수양은 물론이고 인간 전체의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국가 경영이나 세계 경영을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삼죠.


그러고 25백년 전에 공자라는 사람이 나와서 유가사상이 나오게 되었죠.

소위 요순우탕문무주공堯舜禹湯文武周公을 성인으로 받드는 사상이죠.

유가의 정치철학은 2100년 전쯤 중국 한나라 무제 때

동중서童仲舒라는 사람이 나와서 국가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죠.

 

후에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서 유가사상이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낭가세력들과 처절한 사상 전쟁을 하게 되었죠.

그 절정은 소위 묘청의 난이라고 하죠.

신채호선생은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고 했죠.

그 때 유가세력의 대두 김부식한테 낭·불 사상의 묘청이 패배하면서

완전히 낭가사상은 소멸하고 말았죠.

사상은 말할 것도 없고 기록들은 지하로 숨었으며,

우리나라의 역사도 삼국사기로 철저하게 반도사관으로 쭈글어 들었죠.

 

여기에 조선유가정권이 철저하게 낭도사상을 봉쇄하면서

한민족의 역사는 중국의 아류로 떨어지게 되고 2천년을 넘어 갈 수가 없었죠.

이조정권의 분서갱유는 대단했습니다.

태고적 역사서를 가지고 있는 자는 참수斬首를 했죠. 모가지를 쳤다는 말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예종1에는 닉자처참 匿者處斬'이라는 말이 있었죠.

숨기는 자는 모가지를 쳤다는 거죠.

단지 한가지의 이유 때문에.

유가의 사상하고 다르고 공자의 중국역사와 다르다고.

 

그러면서 우리의 태고시설 9천년 역사와 

거기서 살아 숨쉬던 도의 정신은 깡그리 없어졌죠.

고려의 무신정권부터 이조의 유가정권 500년에 걸친 철저한 상고역사 말살의 정책,

거기다가 완전히 불을 태워 완벽하게 없애버린 놈들이 일제죠.

소위 식민사관.

거기에 물들어 있는 한국 사학계의 강단사학자들, 그 교육을 받는 대한민국 국민들.

지금은 어디든지 찾아 보십시오.

반만년을 입에 아무리 붙이고 댕겨도 반만년을 찾을 수도,

우리의 고유 정신을 찾을 수도 없죠.

 

지금의 사회상, 정치판, 왜곡된 현실의 모든 것의 근원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보죠.

그래서 제가 이 블로그를 열게 된 동기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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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닦는다고 하면 우리들은 처음에 어떤 인상을 가질까요?

뭔가 세상하고는 멀어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특별한 존재로서 인식하기가 쉽죠.

 

과연 도를 구한다는 것이 그런 것일까요?

언제부터인가 도를 닦으면 산속으로 들어가고

세상과 단절하고 현실 정치나 경제를 벗어나 초연하는 삶으로만 일관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혼자서만 우뚝 선 존재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죠.

 

물론 세상을 살면서 온갖 잡념에 물들고 세속의 때를 벗길려면

일정한 단절이 필요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일면 이해를 할 수는 있겠지만요.

그렇다고 영영 세상을 등지고 다시는 가족들에게 돌아오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는 오히려 인간의 도를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죠.

 

자신의 깨달음과 해탈을 위하여 주변과의 관계를 깨고

사회적, 혈통적 책임을 무시하는 것은 일종의 작은 얻음을 위한 도피요.

무책임한 위치 이동에서 오는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적 행위일 수밖에 없죠.

 

시선을 종교판으로 돌려도 별로 나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요.

세상이야 자기 신념대로 사는 것을 누가 말릴 수는 없지만

근본을 깨치지도 못한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그릇 인도하면서

중생들을 광신도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종단의 이익과 일부 교주의 사욕에 의한 종단운영은

일반인들이 종교에 혐오감을 가지기에 이미 선을 넘어섰고요.

 

사회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 인간억압, 속임수 등은 말할 것도 없죠.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늘과 땅, 인사가 돌아가는 이치와 그 속에서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

, 도의 근본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잃어버린 데서 찾을 수가 있다고 봐요.

우리들에게 정말 정도正道를 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주는

가르침은 없는 것일까요?

 

 

글쎄요! 주변을 돌아보면 그거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죠.

지금과 갈은 경쟁사회에서 밥벌어 먹고 살기에 전력을 다해도 힘든데.

그거 찾을려면 평생 전 정력을 쏟아도 힘들텐데요.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희소식이 있죠.


그 소식을 접하는 것은 다음 회로 미루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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