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 사상'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06.22 한민족의 상고 사상은 어떻게 묻혀 버렸는가

예전에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들지 않을 때 그냥 나가면 먹을 것이 있고, 전쟁도 없고,

인간들은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신과 함께 서로 잘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몇백년을 살았던 시절이 있었죠.

태고시절의 이야기죠.

 

그 때 마음껏 사고하고 마음껏 도닦고 하면서

인생과 우주에 대해서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이 있었죠.

지금과 같은 혼탁한 세상이 오기전,

그리고 신과 인간이 같이 살면서 낙원과 같이 생활했던 때,

인간이 깨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구전심수口傳心授하던 때가 있었죠.

 

그게 말입니다.

말로만 전해 왔으면 지금의 우리들은 아마 전혀 알 수가 없었을 거예요.

지금으로부터 6000~1만년전의 이야기이니까요.

이 시기에 점점 그것들이 기록으로 남게 되었지요.

그런 태고의 황금시절의 기록과 이야기들에 바탕을 둔 생활, 국가경영이

그래도 2천년전까지는 내려왔죠.

 

체제가 없어지면 이제는 기록으로 남을 수 밖에 없죠.

그 순간 또 후손들을 위하여 기록을 보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었죠.

제가 보기에는 근 1500년전까지만 해도 그런 기록들이 지천에 늘려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찾아 보기가 엄청나게 어렵죠.

 

좀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사상 전쟁이 있었죠.

이른바 낭가사상郎家思想이라고 해요.

태고적 때부터 내려오는 인간과 신의 세계, 자연의 이치를 관통하고 

이를 생활원리로 체득하면서 인간완성을 추구하고 

만인이 다 함께 축복을 받으면서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집단의 무리죠.

개인의 수양은 물론이고 인간 전체의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국가 경영이나 세계 경영을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삼죠.


그러고 25백년 전에 공자라는 사람이 나와서 유가사상이 나오게 되었죠.

소위 요순우탕문무주공堯舜禹湯文武周公을 성인으로 받드는 사상이죠.

유가의 정치철학은 2100년 전쯤 중국 한나라 무제 때

동중서童仲舒라는 사람이 나와서 국가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죠.

 

후에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서 유가사상이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낭가세력들과 처절한 사상 전쟁을 하게 되었죠.

그 절정은 소위 묘청의 난이라고 하죠.

신채호선생은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고 했죠.

그 때 유가세력의 대두 김부식한테 낭·불 사상의 묘청이 패배하면서

완전히 낭가사상은 소멸하고 말았죠.

사상은 말할 것도 없고 기록들은 지하로 숨었으며,

우리나라의 역사도 삼국사기로 철저하게 반도사관으로 쭈글어 들었죠.

 

여기에 조선유가정권이 철저하게 낭도사상을 봉쇄하면서

한민족의 역사는 중국의 아류로 떨어지게 되고 2천년을 넘어 갈 수가 없었죠.

이조정권의 분서갱유는 대단했습니다.

태고적 역사서를 가지고 있는 자는 참수斬首를 했죠. 모가지를 쳤다는 말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예종1에는 닉자처참 匿者處斬'이라는 말이 있었죠.

숨기는 자는 모가지를 쳤다는 거죠.

단지 한가지의 이유 때문에.

유가의 사상하고 다르고 공자의 중국역사와 다르다고.

 

그러면서 우리의 태고시설 9천년 역사와 

거기서 살아 숨쉬던 도의 정신은 깡그리 없어졌죠.

고려의 무신정권부터 이조의 유가정권 500년에 걸친 철저한 상고역사 말살의 정책,

거기다가 완전히 불을 태워 완벽하게 없애버린 놈들이 일제죠.

소위 식민사관.

거기에 물들어 있는 한국 사학계의 강단사학자들, 그 교육을 받는 대한민국 국민들.

지금은 어디든지 찾아 보십시오.

반만년을 입에 아무리 붙이고 댕겨도 반만년을 찾을 수도,

우리의 고유 정신을 찾을 수도 없죠.

 

지금의 사회상, 정치판, 왜곡된 현실의 모든 것의 근원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보죠.

그래서 제가 이 블로그를 열게 된 동기이기도 하고요.


Posted by 工彬
,